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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레, 그 246일의 여정

입력 2021. 05. 10   16:19
업데이트 2021. 05. 1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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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욱 대위 동명부대 24진
박치욱 대위 동명부대 24진

파란색 베레모를 쓰고 임무를 수행하는 유엔 평화유지군은 ‘블루베레(Blue Berets)’로 불린다. 그 모습을 동경했던 내게도 지난해 여름 ‘블루베레’가 될 기회가 찾아왔다.

레바논 평화유지단 동명부대는 ‘유엔안보리결의안 1701호’에 따라 지난 2007년부터 파병돼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예방하고 레바논 남부 지역에 불법 무기와 무장단체의 유입을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대한민국 최장기 파병부대다.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 레바논은 이스라엘과 자국 내 친(親)이란 세력인 헤즈볼라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는 데다 베이루트항 폭발 사고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언제든지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준비과정에서 교전수칙을 완벽히 숙지하고 일사불란한 조직력을 갖춘 팀을 만들어 나가야 했다.

12시간 넘는 비행 끝에 도착한 레바논의 첫인상은 아름다웠다. 눈부신 태양과 청명한 하늘, 우거진 녹음은 탄성을 자아냈고 보석처럼 빛나는 지중해는 더없이 낭만적이었다. 하지만 작전현장에 투입되니 생각이 달라졌다. 곳곳에서 내전과 전쟁의 상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시로 들리는 총성과 폭음, 경제 악화로 인한 시민들의 시위 등 레바논은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고정감시 작전 중 수시로 들려오는 총성과 폭음에 총기를 쥐었다 놨다를 반복하다 주둔지로 돌아오면 녹초가 됐다. 기동정찰 중에는 수많은 언덕과 좁은 도로, 주민들이 생활하는 마을을 통과해야 했는데 기동로 상에 예정에 없던 시위가 발생하거나, 현지인의 공격적인 운전으로 위협받을 때는 아찔했다. 한밤중 불빛 하나 없는 작전지역을 달빛과 감시장비에 의존해 도보정찰 할 때는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잦은 폭우와 고온다습한 기상으로 온몸이 젖기 일쑤였다. 그렇게 보낸 8개월 동안 동명부대는 하루 20여 회씩 약 4000번에 달하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돌이켜보면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험난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긋 웃는 꼬마들과 손을 흔들어주는 현지인들의 환대는 뜨거운 태양과 밤샘 작전으로 지친 우리에게 큰 힘이 됐다. 그럴 땐 정말 ‘우리가 레바논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과 자부심이 생기곤 했다. 또 팀장의 중압감을 자신감으로 바꿔준 팀원들의 헌신과 팀워크는 성공적인 임무 수행의 원동력이 됐다.

이제 우리는 레바논 평화유지의 바통을 25진에 넘긴다. 긴장과 고독의 연속이었지만 더없는 보람과 기쁨을 안고 나의 ‘블루베레’를 벗는다. 우리 대한민국과 동명부대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부디 레바논에 항구적인 평화가 찾아오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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