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우리는 다시 이명박이라는 유령과 싸워야 한다

거의 30여 년 전에 읽었던 칼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보면 이렇다. 청년 시절 읽었던 정운영 선생의 칼럼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의 한 대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열변을 토했단다. “자본주의는 말이야, 자본가들만 고급 차를 끌고 다니고, 휴양지에서 고급 요트를 타고, 비싼 와인을 마시면서 흥청망청한다고. 학생들은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그 교수의 의도는 “역시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유발하는 최악의 제도로군요!” 따위의 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고 한다.

“와, 정말요? 자본가라는 거, 진짜 멋진데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에는 여러 원인이 있었겠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그들이 인간의 탐욕 관리에 실패했다는 점을 든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욕심이 있다. 이 사실을 부인하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

아무리 “요트를 타고 고급 차를 몰며 값비싼 와인을 마시는 자본가는 탐욕스럽다”고 말한들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탐욕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라거나, “인간은 개인의 탐욕을 누르고 오로지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것은 의미도 없고, 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이 ‘인간은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적 존재다’라는 뜻은 또 절대 아니다. 그리고 탐욕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과, 그 탐욕을 부추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탐욕을 경시한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했다고 해서, 탐욕을 신성시한 신자유주의의 세상이 행복했던 게 아니지 않나? 개인의 탐욕과 공동체의 화합 사이에서 지켜야 할 선은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이다.

탐욕을 부추겼던 신자유주의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났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과는 국민의힘의 압승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분석할 정치적 식견이 나에게 있을 리 없다. 다만 이 결과가 빚을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으로 진보의 시대를 끝내기 위한 보수의 전략은 늘 비슷했다. 바로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사회에서 활짝 열렸던 복지의 시대를 끝장낸 보수의 선동은 “우리가 당신을 더 부자로 만들어줄게”였다.

나는 오세훈이나 박형준 같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제1, 제2 도시의 시장이 된 것은 별로 두렵지 않다. 그건 싸워나가면 될 일이다. 내가 정말 두려운 것은 그들이 앞으로 끊임없이 자극할 인간의 탐욕이다. 그리고 이 탐욕이 들불처럼 번지면, 그것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서운 일이 된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뉴욕시립대학교 교수는 사석에서 “나는 1980년 투표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레이건에게 투표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의 등장으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됐고 민중들의 삶이 파탄 났기 때문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9일 서울시청 기획상황실에서 열린 코로나19 종합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그런데 크루그먼이 더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은 따로 있었다. 레이건의 등장 이전까지 미국 민중들이 못 살았느냐? 천만의 말씀, 미국 민중들은 1970년대까지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기를 경험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약 30년 동안 지속된 이른바 대번영기가 그것이다.

이는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를 앞세워 신자유주의의 지옥문을 연 영국과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유럽 민중들이 그 전까지 못 살았느냐?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으로 탄탄한 복지시스템을 만들어나갔던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직후 30년 동안 ‘영광의 30년’이라 불리는 경제적 전성기를 누렸다.

크루그먼이 환장(?)하는 대목이 이것이었다. 민중들이 못 살고 있었다면 “신자유주의라도 해봐!”라는 목소리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잘 살고 있었는데도 민중들이 그 허접한 신자유주의에 열광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의 탐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1980년 당시 미국에서 레이건을 지지했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은 중산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이어진 복지의 시대에 가장 큰 혜택을 입었던 사람들이었다.

이때 레이건이 들고 나온 것이 부자 감세였다. 대번영기에 91%까지 치솟았던 최고 소득세율은 레이건 시대에 단번에 28%로 폭락했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 하라는 취지에서 책정된 48%의 법인세율도 34%로 떨어졌다.

중산층은 여기에 열광했다. 정작 최고소득세율을 적용받을 일도 없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자기가 곧 더 큰 부자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 법인세율이 하락하면 자기 월급이 오를 것이라 믿었다. 레이건은 “부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역설했는데, 중산층은 부자들과 자신의 존재를 헛갈렸다. 이 착각의 근본에는 ‘나는 더 큰 부자가 될 테야’라는 탐욕이 있었다.

이명박이 자극한 탐욕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7년 겨울 이명박이 역사상 가장 큰 표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 일을 말한다. 이명박의 압승이야말로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 아닌가? 크루그먼 교수가 “도대체 왜 사람들이 레이건을 찍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왜 사람들이 이명박을 찍었는지 당최 이해가 안 간다.

이명박이 1970, 1980년대 개발시대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나에게 좀 부족하다. 이런 이미지라면 1992년 대선에 도전한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원조에 가깝다. 하지만 정주영은 참패했고 이명박은 압승했다.

이명박이 경제를 살릴 적임자로 보였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민주진보정부가 집권했던 1998~2007년 경제가 나빴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경제성장률도 4~5%로 매우 안정적이었다. 물론 이것을 1987~1996년 초고성장기와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당시는 세계 경제 자체가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 상태였다.

그러면 도대체 이명박은 무엇 때문에 압승을 거뒀는가? 여기에 이명박이 자극한 탐욕이 개입한다. 그가 앞세운 종부세 무력화와 부자 감세는 사람들에게 ‘내가 곧 부자가 될 건데 세금을 덜 내는 세상이 좋지 않겠어?’라는 생각을 심어준다. 1980년 미국 중산층이 레이건을 지지한 이유와 다르지 않다.

서울시장 오세훈이 두려운 게 아니라

그래서 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시대가 두렵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자극할 탐욕의 세상이 두렵다. 그의 공약에 따르면 앞으로 서울은 용산을 시작으로 곳곳이 파헤쳐져 개발의 열풍이 불 것이다.

그런데 그 개발의 혜택을 입는 사람이 누구일까? 소수의 부동산 부자들이거나 돈 많은 투자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나도 저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여기서부터 세상은 꼬이기 시작한다.

당선되자마자 오 시장은 서울시 공시지가를 재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과표를 깎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혜택이 누구에게 집중적으로 돌아가겠나? 당연히 강남에 고액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어쨌든 내 재산세도 조금은 깎일 테니까’라거나 ‘내가 집은 없지만 나중에 집을 마련하면 세금을 안 내도 되니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시 이명박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자본가들이 고급 차를 몰고, 고급 요트를 타고, 고급 와인을 마시는 것에 아무 불만이 없는 사람이다. 정당하게 번 돈이라면 그 돈으로 요트를 타건 회전목마를 타건 무슨 문제인가?

나의 관심은 삶 자체가 고통의 연속인 수많은 민중들이다. 그리고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부자가 행복한 세상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부자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우리도 곧 저렇게 될 테니 부자가 행복한 세상이 좋은 거야’라고 헛꿈을 꾼다면 변화는 요원해진다.

다 물리쳤다고 생각했는데, 10년 만에 다시 이명박의 유령을 만난다. 하지만 어쩌랴? 안 벌어지기를 바랐지만 그 일은 벌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그랬듯이 신발 끈을 질끈 동여매고 다시 싸워야 한다.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시 전진하자. 애초부터 쉬운 싸움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 않았나?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 유령에 맞서 결연히 싸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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