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박서하
그림=박서하

얼마 전에 ‘물을 끓일 정도의 뜨거운 사랑(湯を沸かすほどの熱い愛)’이라는 2016년에 개봉한 일본영화를 보았습니다. 암으로 죽어가는 엄마의 뜨겁고도 따뜻한 사랑으로 진정한 삶과 가족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휴먼영화입니다.

'행복 탕(幸の湯)'이라는 대중목욕탕을 운영하는 이 집은 아버지가 약 1년간 집을 나가버린 후 목욕탕은 임시휴업에 들어가지만,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를 아이를 아버지가 데리고 돌아오면서 목욕탕영업은 재개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목욕탕요금을 실외에 아닌 실내의 약간 높은 의자에 앉아서 돈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것을 일본말로 반다이(番台,ばんだい)라고 하는데 그곳에 앉아있으면 남탕과 여탕 모두 다 보입니다.

저도 처음 일본에 가서 대중목욕탕을 갔을 때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더 놀란 건 목욕하고 있는데 옷을 입은 아저씨가 들어 와 청소를 시작하더라고요. 너무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저 외에는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목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더 놀랐죠.

최근까지도 비교적 규모가 큰 남탕 사우나에 여성 스텝이 들어와서 일본 젊은이들도 목욕하다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반다이가 있는 대중목욕탕이 대도시에는 거의 사라져 한국처럼 밖에서 돈을 내고 들어가는 목욕탕이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이런 반다이가 있는 곳도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남학생들이 제일 하고 싶은 아르바이트가 목욕탕 반다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대중목욕탕은 센토(銭湯)라고 합니다. 후로야(風呂屋,ふろや) 혹은 유야(湯屋,ゆや)라고도 하지만 센토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목욕탕의 탕(湯)은 끓인 물이라는 뜻도 있지만, 목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돈을 의미하는 전(銭)과 합쳐서 돈을 받고 목욕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센토가 된 거죠.

기록에 의하면 일본에 대중목욕탕은 1591년에 도쿄 시요다쿠에 처음 등장합니다. 1810년에는 도쿄에 523개의 대중목욕탕이 운영되고 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내부는 매우 깜깜했겠죠. 그래서 목욕을 하는 사람들끼리 잘 안 보이니까 먼저 '실례합니다' '먼저 탕에 들어갑니다' 등을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도 온천에 가면 그렇게 말하는 일본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대중목욕탕이 생긴 직후부터 전국 목욕탕을 돌아다니는 목욕탕의 기녀인 유녀(湯女) 여러 명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겨주고 씻겨주는 서비스가 있는 목욕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별도로 요금을 내면 2층에서 오락을 즐길 수도 있었어요.

간식을 먹으면서 바둑, 마작 등 게임을 즐기기도 하고 유녀(湯女)들과 어우러져 술 파티를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목욕탕이 너무 문란하다는 이유로 목욕탕에서 일하는 유녀(湯女) 600명을 기방으로 돌려보내면서 유녀 목욕탕은 폐지되었습니다. 이후에 목욕탕 2층은 주로 손님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그 관습이 남아서 그런지 일본에서는 목욕하고 나면 병에든 차가운 우유를 마시거나 생맥주를 마시는 고객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아무래도 목욕 후에는 시원한 무언가 마시고 싶어지니까요.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일본은 혼욕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에도시대 우키요에라는 풍속화에도 혼욕하는 남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묘사되어 있는데 명치유신 이전까지 남탕과 여탕의 구분이 있지만 가운데 뚫려 있어 왕래가 가능하거나 아예 구별이 없는 그런 혼욕 목욕탕이었습니다.

1657년 혼욕금지령, 여탕의 인원 제한 등을 시행했지만 물론 잘 지켜지지는 않았죠. 근대 이후 서구인들이 일본의 혼욕문화를 야만적이라고 비난을 하자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규제하기 시작하면서 혼욕문화가 사라졌지만, 노천온천 등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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