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양특강] 강유정 강남대 교수
주제 ① 영화로 세상 읽기

“취향을 가져야 합니다. 단순히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화의 어떤 취향, 또 어떤 기자가 쓴 어떤 기사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유정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에서 ‘영화로 세상 읽기’를 주제로 강연하면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취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취향이 없는 사람은 자기 기준이 없다는 것”이라며 “정보를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려면 시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취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2005년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문학평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영화평론이 당선된 뒤 문학과 영화를 넘나들며 평론활동을 하고 있다.

▲ 강유정 교수가 지난 10월 29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강연하고 있다. © 김태형

‘미장센’과 ‘몽타주’만 기억하면 ‘나도 평론가’

“영화는 워낙 대중적 장르이기 때문에 다 전문가라고 생각해요. 평점도 매기고 한줄 평도 남겨요. ‘미장센’과 ‘몽타주’ 두 가지만 알고 있으면 그냥 ‘재밌다’ ‘재미없다’를 넘어 조금 더 전문적으로 보실 수 있어요.”

세계 최초 영화라고 불리는 <기차의 도착>은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하는 것을 찍은 기록물이다. 강유정 교수는 영화가 기록물에서 예술이 된 가장 큰 요인을 ‘미장센’과 ‘몽타주’ 두 가지로 꼽았다. 그는 “보도사진이 일반 사진과 다른 점은 단순히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찍었다는 것”이라며 “미장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의도를 가지고 장면마다 배치했기 때문에 단순 기록물을 넘어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강유정 교수는 영화 <올드보이>를 예로 들어 미장센(mise en scene)의 뜻을 설명했다. © <올드보이>

강 교수는 영화 용어인 ‘미장센’의 뜻을 설명한 뒤 2003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 영화 <올드보이> 한 장면을 소개했다. 그는 미장센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띈다는 것부터 시작한다며 사방무늬 패턴의 보라색 벽지가 눈에 거슬리게 배치된 것을 지적했다. 그는 “이 장면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미장센 중 하나는 본인이 머리를 쥐어뜯은 것처럼 보이는 오대수(최민식)의 머리 스타일”이라며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15년간 감금된 사람의 머리라는 것을 안다면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개연성이라는 개념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한 사건을 두고 인간의 이해력 안에서 재배치할 때 가장 중요한 감각이 개연성”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몽타주, 즉 편집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편집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줄이거나 늘리고, 또 어떤 부분은 생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처럼 소설과 기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미장센이 문학에 있어 ‘서술’하는 것이라면, 몽타주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플롯’을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사도 현실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강 교수는 언론의 프레이밍 기능이 영화에서 편집과 같다고 말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언론은 사실의 영역을 다루지만, 영화는 거짓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편집은) 모든 매체에서 다섯 걸음만 앞서가면 좋다”며 “100보 앞서가면 다음 세대에 추앙을 받고, 20보 앞서가면 독자적인 색을 가질 수 있지만, 대중과는 거리가 멀어진다”고 말했다.

비판적 감시관은 관찰에서 시작

“자, 이것은 여러분한테 한번 맡겨볼게요. 스토커라는 영화인데, 제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예요. 저 여자는 몇 살일까요?”

▲ 영화 <스토커>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한 스릴러 영화다. 여자 아이 주위로 구두가 둘러싸여 있다. © <스토커>

강 교수는 침대 위에 같은 모양 신발이 사이즈별로 놓여 있는 장면을 보여주며 여자 나이를 물었다. 힌트는 여자가 생일마다 뭘 받았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신발 개수를 세더니 이내 “16살” “17살”이라고 외쳤다. 정답은 18살이었다. 생일선물은 1살 때부터 받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비판적 감시관은 관찰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며 “생각보다 우리가 뭔가를 볼 때 잘 안 본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찰이라는 게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트료시카 인형(러시아 전통 인형)’을 ‘똑같이만 성장한다’는 의미로 설명하며, ‘U자형’으로 놓인 신발들과 여자아이의 아기 같은 자세를 종합해볼 때 자궁이 연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장면을 두고 “여러 가지 생각할 요소를 많이 준다”며 “거꾸로 물으면 박찬욱 감독은 이런 걸 왜 만들었을까”하고 되물었다. 무엇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평상시에 세부적인 것을 잘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만 관객 영화의 공통점은 ‘판타지’

“‘판타지’ 하면 미국인은 <어벤져스>를 생각하지만, 한국인들은 <내부자들>이나 <암살> 같은 거 떠올려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어지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 판타지입니다. 이루어내는 게 환상이고 이런 환상의 영역을 담당하는 게 한국 영화에 있습니다.”

영화에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게 하는 힘이 있다. 강 교수는 “판타지가 현실에서의 불가능성을 영화적인 충족 효과로 결핍을 채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영화 <어벤져스>는 백퍼센트 오락이지, 판타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만 넘는 영화들 공통으로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판타지 영화인 게 드러난다.

강 교수는 개연성이 부족해도 관객들은 판타지에 환호한다고 말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는 도끼로 사람 손을 자르는 장면이 나온다. ‘덜 나쁜 놈’이 나쁜 권력의 주체로서 언론을 차단하는 것을 마치 홍길동이 의적이 되는 것처럼 표현했다. 영화 <암살>에서는 친일파를 처단하는 장면이 엔딩에 나온다. 현실은 비극적이지만, 영화에서만큼은 희극으로 결말을 맺는다.

▲ 영화 <내부자들>에는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라는 시민들 욕망이 담겨 있다. 영화 <암살>에는 친일파를 처단하는 판타지가 담겨있어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 <내부자들> <암살>

‘건축학개론’의 첫사랑 판타지

“영화 속 첫사랑은 언제나 머리가 길어요. 부드러운 갈색으로 염색하고 다녀요. 안경을 끼지 않고, 무섭게 짙은 화장도 하지 않아요. 언제나 치마 입고 다니고, 손에 책을 들고 다닙니다. 전형적인 첫사랑 미장센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의 진짜 첫사랑은 어땠나요? 단발머리거나, 안경도 쓰고, 츄리닝만 입고 다녔을 수도 있어요.”

<건축학개론>은 삼사십대 남성으로 타겟팅 되어 있다.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은 특정 계층과 성별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수지는 허구의 첫사랑 이미지다. 2003년 영화 <클래식>의 손예진도, 1989년작 영화 <겨울 나그네>의 이미숙도 모두 전형적인 첫사랑 이미지다. 시대를 관통하는 첫사랑 이미지로 표현된다.

▲ 영화 <건축학개론>에서는 스무 살에 첫사랑으로 만났던 두 남녀가 서른다섯 살에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무 살 배역으로 수지와 이제훈이 연기했고, 서른다섯 살 배역으로 한가인과 엄태웅이 연기했다. © 윤재영

강 교수는 <건축학개론>이 다른 멜로 장르와 다른 점 중 하나로 1인 2역을 쓴 것을 꼽았다. 이 영화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데 1인 2역을 썼다. 10년으로 외모가 크게 바뀌지는 않지만, 사람의 내면이 바뀌기 때문에 다른 배역을 썼다. 과거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배역으로 나타낸 것도 미장센이다.

과거 멜로에서 장애물로 등장하는 것은 전쟁, 병, 부모의 반대 등이었는데, <건축학개론>에서는 경제적 이유라는 점이 첫사랑 서사에 진입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어느 동네’라는 상징적인 기호 욕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가까운 이야기다. 영화 속 엄태웅은 건축사무소장의 딸과 연애하는데, 예쁜 데다 젊은 여성이다. 강 교수는 이 점이 <건축학개론>에서 삼사십대 남성의 판타지를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한가인은 집을 무너뜨리고 새로 지어 달라고 했지만, 엄태웅은 기존 집 위에 증축해주었다. 강 교수는 “제일 찌질하던 시절에 창피함과 굴욕감을 줬던 첫사랑 여자를 만나서 멋지게 이별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30대 엄태웅이 20대에 겪은 경제적 굴욕감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윤재영

“글을 쓰는 대상의 결핍을 읽어야”

강 교수는 이처럼 잘 된 판타지는 타겟팅이 되어 있다고 말한다. 영유아를 대상으로 만든 ‘뽀로로’에는 영유아의 판타지가 들어있다. 펭귄이 말하고 비행기도 타고 악어와 친구 하는 것이 나온다. 일종의 의인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놀 때 물건에 이름을 붙이고, 모든 게 살아있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물을 인격화하는 어린이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 어린이 애니메이션의 특징이다. 강 교수는 특히 픽사 애니메이션에 어린이의 판타지가 잘 드러났다고 말했다. 영화 <토이스토리>에서는 장난감이 다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머릿속에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감정을 끌어와서 액션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도 인격화한 것이다.

강 교수는 저널리스트나 무엇을 제작하는 창작자 모두 독자나 소비자의 결핍을 읽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정 소비자의 결핍을 충족해주는 것이 바로 판타지의 요소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뭔가를 쓰는데 대상을 정하면 대상의 결핍을 읽어야 하고 결핍을 읽는다는 것은 판타지를 읽는다는 거예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면 글쓰기가 굉장히 달라집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홍종호 이상수 강유정 이주헌 허효정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방학 때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현주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