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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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각기동대’의 SF 요소와 ’서스페리아’의 공포 연상하게 하는 작품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타샤 보스’(안드레아 라이즈보로)는 뉴스를 통해 자신이 완료한 작전 소식을 접한다. 오랜만에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녀는 아들이 조종하는 로봇 인형의 춤을 보며 웃는다. 하지만 그녀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가족의 모습을 반영하듯 화면은 흔들리고 있다.

그녀는 암살자다. 임플란트라는 정신 침투 기술을 이용해 호스트라 칭하는 타인 육체에 들어가 비밀리에 암살을 수행하는 전문 요원이다.

임플란트 기술을 이용하면 3일 동안 타인의 몸을 로봇 인형처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괴뢰사(傀儡師)가 될 수 있다. 이 완벽한 위장 암살 수법은 의뢰인들에게 큰 신뢰를 얻고 있어 비즈니스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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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방법에는 제약이 존재한다. 주입된 자아 의식은 호스트가 죽어야만 그 안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완벽한 증거 인멸 방법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호스트의 의식에 영향을 받아 기억이 오염되거나 뇌 영구손상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위험도 감당해야한다.

오는 3월 개봉하는 영화 ‘포제서’(원제: Possessor, 수입/배급: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는 타인의 자아를 억제하고 원격 조종해 암살을 수행하는 전문조직 요원 타샤 보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타샤 보스는 임무를 마치고 호스트 몸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기억 검증을 통해 이상 여부를 점검받는다. 테스트를 통과한 그녀에게 ‘정상’이라는 판정이 떨어진다. 그러나 그녀는 뭔가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 기억이 사라진 것인지에 대해 그녀 자신이 판단할 방법은 없었다.

그녀는 암살 조직의 상관인 ‘거더’(제니퍼 제이슨 리)에게서 새로운 작전을 브리핑 받는다. '주스루'라는 데이터 마이닝 기업의 경영권을 노리는 의뢰인 요구에 따라 ‘콜린 테이트’(크리스토퍼 애봇)라는 남성의 몸에 들어가 목표물을 제거하는 작전에 투입된다. 조직의 미래가 달린 이 암살 작전은 호스트인 콜린 테이트의 인생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호스트의 말투와 습관을 그대로 따라하며 노련한 요원답게 목표물 제거 임무를 계획대로 착착 진행해 나간다. 하지만 의외의 변수가 발생하면서 타샤 보스는 작전 수행 중 위기에 빠진다.

▲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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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80년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작품 계승

영화 ‘포제서’의 주요 소재인 인격 이식·주입은 ‘공각기동대’(1995)를 비롯해 ‘아바타’(2009), ‘셀프/리스’(2015) 등 여러 작품에서 쓰여 왔다. 기업 스파이, 의식 내면 침투, 현실 검증을 위한 토템 등의 요소는 '인셉션'(2010)을 떠올릴 수 있는 부분이다. 

주인공 타샤 보스가 임플란트 후 호스트 안에서 느끼는 강렬한 감각은 영화 곳곳에서 선명한 색상과 슬래셔 영화적 연출을 통해 표현된다. 특히 영화 프롤로그에서는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오컬트 공포 영화 ‘서스페리아’(1977)의 불안감이 가득한 음악과 고어적 연출, 선명하고 화려한 미장센을 부분적으로 연상시킨다.

▲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브랜든 크로넨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그의 아버지인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스캐너스’(1981), ‘브루드’(1979) 등의 연출이나 소재 차용도 엿보인다. 특히 콜린 테이트가 타샤 보스의 남편을 위협하며 말하는 영화 후반의 대사는 ‘파편들’(1975)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근 미래 시대와는 맞지 않게 진공관과 아날로그 다이얼 뭉치로 이루어진 장비들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전성기 시절 영화 속 소품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인상도 준다.

녹아내린 밀랍 인형 같은 신체변형, 가면을 뒤집어쓴 듯 뒤틀리고 왜곡된 자아의 시각적 표현, 폭력에 대한 원초적 감정, 그로테스크한 미적 경험 등은 공포 영화와 SF 영화를 접목했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70~80년대 작품들을 계승한다.

▲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캐릭터의 극적 변화도 주목할 부분이다. 암살 임무를 끝낸 타샤 보스는 남편과 자식이 기다리는 집에 대한 기억에 집착한다. 하지만 막상 집에서는 평범한 삶에 흥미를 잃은 무감각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녀에게 가족이란 지켜야할 소중한 것과 임무에 방해되는 걸림돌이라는 양가감정을 갖게 만드는 존재다.

그녀의 모성은 자고 있는 아들의 냄새를 맡고 싶어하고 기억 속 깊이 남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변화와 파괴의 기로에 놓인 그녀의 자아는 점점 원래 가졌던 정체성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또한 그녀의 의식은 타샤 보스라는 육체의 껍데기 속에서는 남편과의 관계보다 살인의 감각을 더 선명하게 떠올린다. 반면 콜린 테이트 안에서는 남성의 육체로 느끼는 자극적이고 새로운 감각에 깊이 몰입한다.

▲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그녀는 두 번째로 나비 표본을 손에 쥐어본다. 전과 달리 더 이상 죄책감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완벽하게 자기 정체성에 대해 정상 판정을 받는다. 

원래 자기 몸으로 되돌아온 타샤 보스의 자아가 이전과 동일한지는 폴 리쾨르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논고를 놓고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 뒤에 숨어 익명의 모습으로 휘두르는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가해자 타샤 보스와 그로 인해 행복과 인생을 완전히 난도질당한 피해자 콜린 테이트. 영화는 두 자아가 한 몸 안에서 충돌하며 분출하는 원초적 분노와 광기를 통해 정의도 이성도 마비된 21세기의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클래식한 호러 영화 문법을 빌려 표현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작품에 매력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그의 아들 브랜든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포제서'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

▲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포제서. ⓒ조이앤시네마/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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