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시한폭탄, 떨고 있는 완성차 외투기업
돌고 도는 시한폭탄, 떨고 있는 완성차 외투기업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1.02.08 00:00
  • 수정 2021.02.08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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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엠·쌍용차·르노삼성은 계속 표류하고 있다”
​​​​​​​언제나 한 손엔 철수 카드 ‘만지작’… 반복되는 위기의 실체

[리포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완성차 외투기업①

2018년 2월 28일 전국금속노동조합은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발표 이후 청와대에 요구 서한을 전달하며 “한국지엠 경영정상화와 미래전망을 마련하는 논의에 금속노조가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금속노조

국내에 진출한 완성차 외투기업 3사(한국지엠,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는 한국 사회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3사는 그 시기와 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위기가 반복될수록 이 공통점은 더욱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돌아가면서 터지는 3사의 위기는 이들이 고용하고 있는 종업원 수, 전후방산업을 통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을 생각해 봤을 때 단순히 공장 문을 닫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미 한국 사회는 3사가 남긴 굵직한 상처를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왼손엔 수익성, 오른손엔 철수

3사의 공통점은 국내 법인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본사가 외국에 있다는 것. 그리고 국내 법인은 본사의 전략에 따라 ‘본사가 언제든 철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국지엠은 지난 2018년 군산공장 폐쇄로 홍역을 치르고 ‘10년 공장 유지’를 약속받았지만, 매년 교섭 때마다 GM은 언론을 통해 “장기적 미래는 의심스럽다”, “아시아에 다른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등 철수 가능성을 내포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쌍용차는 중국 상하이차의 ‘먹튀’ 이후 또다시 먹튀 논란 한 가운데에 놓여있다. 지난해 12월 15일 쌍용차는 11년 만에 자금난으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수익성 확보를 내세운 르노그룹의 새 경영 전략이 발표된 이후 지난달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1998년 IMF 이후 부도난 국내 완성차 기업을 외국 기업이 헐값에 인수했을 때부터 한국지엠, 쌍용차, 르노삼성자동차의 글로벌 본사(현재 차례로 GM, 마힌드라그룹, 르노그룹)의 최대 관심사는 수익성이다. 이를 다시 말하면 수익성 악화와 맞닥트렸을 때 글로벌 본사는 언제든 철수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허점을 정부도 모르진 않았으나 당시 정부 입장에서는 대규모 실직 사태를 맞이하느니 새 주인을 찾아주고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는 게 더 중요했다. 문제는 그때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동안 드러난 외투기업의 부작용이 무시되거나 방치된 채 남아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정부는 외투기업의 한국 진출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는 모양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국내 진출한 외국 기업에 법인세, 소득세, 취득세 등 각종 조세를 감면해주고, 국·공유 토지와 공장을 저렴한 임대료로 빌려준다. GM은 대우자동차 인수 당시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7년간 소득세와 법인세 100% 감면 및 이후 3년간 50% 감면 혜택, 5년간 취득세와 등록세 100% 감면 및 이후 3년간 50% 감면 혜택을 받은 바 있다.

수익은 모기업이, 비용은 자회사가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로 시끄러웠던 지난 2018년, 한국지엠의 재무 현황이 알려지면서 GM과 한국지엠 사이의 부당한 거래 관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한국지엠의 지난 5년간 누적 적자는 1조 9,787억 원이었다. GM이 유럽 시장과 러시아 시장 철수 비용을 한국지엠에 전가하면서 차입금이 증가했고, GM에서 끌어온 차입금은 한국지엠 재무 악화의 주원인이 됐다. 이때 GM에 지불한 차입금 이자 비용만 4,955억 원으로, 누적 적자의 약 25%를 차지했다. 기술개발 및 구매용역 비용과 업무대행료로 GM에 지불한 금액도 지난 5년간 5,000억 원에 달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지엠이 개발하거나 생산하고 있는 차종에 대해서 그 어떤 지적재산권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지엠의 연구개발비용으로 개발한 차종일지라도 그에 대한 로열티는 GM에게 돌아간다. 지적재산권의 부재는 한국지엠이 GM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았다. GM이 떠나는 순간 한국지엠은 GM에게 고액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것도 GM이 허락하는 차종만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쌍용차의 경우 마힌드라그룹이 쌍용차의 ‘티볼리’와 ‘렉스턴 4G’로 기술적인 이득을 취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주장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마힌드라그룹은 550억 원을 지불하고 쌍용차로부터 기술 이전료를 포함한 티볼리 플랫폼을 넘겨받았다(2016년은 쌍용차가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해이기도 하다). 이어 마힌드라그룹이 티볼리 플랫폼으로 만들어 인도 시장에 내놓은 ‘마힌드라 XUV300’은 2019년에 4만 대가 넘게 팔렸다. 오민규 노동자운동연구공동체 뿌리 연구위원은 “쌍용차가 티볼리 플랫폼 사용권을 넘기지 않은 상태에서 인도에서 연간 4만 대 이상 생산·판매했다면 1년에 로열티만 300~400억 원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마힌드라 XUV300뿐만 아니라 렉스턴 4G를 ‘마힌드라 알투루스 G4’로 인도 시장에 출시했는데, 판매량이 2018년 356대에서 2019년 2,042대로 증가했다”며 “티볼리(마힌드라 XUV300)와 렉스턴 4G(마힌드라 알투루스 G4)가 마힌드라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달해 승용차 부문 매출액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문호 소장은 “쌍용차는 손실이 나도 마힌드라는 쌍용차의 제품과 기술력을 이용해 상당한 이익을 보았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 없이 방관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회생 의지 없음’이 쌍용차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본사 경영 전략에 달린 생존

르노삼성자동차의 지분 80.1%를 보유한 대주주 르노그룹은 최근 새로운 경영 전략 ‘르놀루션(Renaulution)’을 발표했다. 르노그룹은 르놀루션을 통해 시장 점유율과 판매량 중심의 경영 전략에서 벗어나 수익성 강화, 현금 창출, 투자 대비 효과에 집중한다는 뜻을 밝혔다. 2023년까지 그룹 영업 이익률 3% 달성, 현금 유동성 약 30억 유로(약 4조 원)를 확보하는 게 목표다.

르놀루션 발표 이후 르노삼성자동차는 2019년 3월 이후 입사자를 제외한 모든 정규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르노그룹의 ‘수익성 강화’ 주문에 따른 후속 조치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그 원인을 ‘GM의 경영 전략 변화’에서 찾았다. 과거 한국지엠은 GM이 중국 자동차 시장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GM이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소형차를 도입하는 것이었는데, GM은 여기에 한국지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중국의 자체 생산 능력이 향상돼 한국지엠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은 2013년을 기점으로 축소된다. 한국지엠의 성장세가 하락하는 것도 이때부터다. 여기에 GM의 유럽 쉐보레 브랜드 철수와 유럽 시장 철수 결정으로 한국지엠의 판매 시장이 사라졌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생산 물량이 대부분 유럽 수출 물량이었기 때문에 군산공장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본사의 경영 전략은 국내 법인의 존망(存亡)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경영 전략의 사전적 의미는 ‘변동하는 기업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기업의 존속과 성장을 꾀하는 일’이지만,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전망을 갖지 못하는 외투기업은 사전적 의미와 같은 경영 전략을 갖추기 어렵다.

더군다나 자동차산업 전체가 미래차로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는 시점에서 본사의 경영 전략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법인 생산공장의 미래는 전기차 등 미래차 물량을 본사로부터 배정받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에 미래차 물량 확보는 본사의 철수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한국지엠노동조합(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이 매년 교섭 때마다 사측에 전기차 물량을 요구하는 것도 한국 생산공장을 유지하겠다는 GM의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투자 부재는 경영 악화 악순환으로

“기본적으로 디자인과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동안 회사는 이 부분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했습니다. 품질 측면에서도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데 적자가 누적되다 보니 투자 여력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러시아 등 수출 시장이 무너진 이후 새로운 시장 개척을 못했던 부분이 회사의 어려움을 가중시킨 주된 이유입니다.” 지난 2019년 예병태 쌍용차 사장이 밝힌 쌍용차 경영 악화의 원인이다.

완성차 외투기업 3사에 대한 연구개발 및 설비 투자는 앞서 설명한 본사의 경영 전략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기업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그동안 3사를 둘러싼 경영 전략은 장기적 사업전략보다는 ‘단기적 투자수익’이 우선이었고, 그 결과 장기 계획을 갖춘 투자보다는 ‘기존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에 주력했다. 위기는 예견된 사태였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장기계획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지가 벌써 10년인데 한국지엠, 쌍용차, 르노삼성자동차는 계속 표류하고 있다”며 “쌍용차가 이번에 세 번째 매각된다고 하더라도 위기는 또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자동차의 경우 2010년대 이후 제대로 된 설비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의 ‘르노삼성 사례를 통해 본 외투기업의 수익전략과 문제점’ 자료에 따르면 르노삼성자동차 재무 구조에서 2000년대만 하더라도 꾸준히 증가했던 르노삼성자동차의 유형자산은 2010년대 초 이후 크게 줄었다. 2001년 3,577억 원 수준이던 유형자산은 2009년 1조 1,201억 원으로 2001년 대비 3배 수준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해당 기간 생산량 증대에 따라 르노삼성자동차가 일정 규모의 설비 투자를 지속해왔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2009년 정점을 찍은 유형자산은 2013년 5,567억 원으로 감소했다. 자산총액 대비 유형자산 비율도 2008년 52.6%에서 2014년 27.7%까지 떨어졌으며 이후 현재까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자산총액이 1조 6,653억 원에서 2조 1,010억 원으로 크게 증가한 것과 대조적으로 유형자산은 6,197억 원에서 6,929억 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비단, 한국지엠, 쌍용차, 르노삼성자동차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외투기업들이 본사가 두드리는 계산기에 따라 연구개발 및 설비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는 경쟁력 약화와 판매 부진으로 이어지고, 기업은 경영 악화에 부딪히면 몸집 줄이기에 들어간다. 결국 연구개발 및 설비 투자를 더더욱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악순환은 계속된다.